2002.4.17.수요일

할아버지 생각

나는 속으로도 겉으로도
할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읜
나에 대한 할아버지의 자애는 각별했다.
나를 볼 때의 할아버지의 눈은
봉의 눈이 살짝 처지면서 그 안에서 뭔가가
자글자글 끓고 있다는 것을
어린 마음에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마도 그건 애간장이 녹도록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었을 테지만
나는 중대한 약점이라도 잡은 것처럼 여겼다.
아무리 고약한 짓을 해도
역성들어 주겠거니 믿었다.
할아버지를 믿고 일부러 말썽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안 계실 때는 현저하게 풀이 죽었다.



- 박완서의《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중에서 -



*일찍 아버지를 잃고 철모르게 자라는 손녀. 그 손녀를 자글자글
애간장이 녹는 눈으로 바라보는 할아버지. 애닯은 우리 인생살이를
압축한 듯, 삽화처럼 그려집니다. 요즘, 외할머니와 손자 사이를 그린
영화 〈집으로〉(저도 지난 주말 아내와 함께 보며 울었습니다)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 모두의
엄연한 삶의 뿌리이며, 태산(泰山)처럼 영원한 마음의 고향
입니다. 그 걸 잊거나 잃어가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느낌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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